[세계일보   2008-03-15 1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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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교수가 이달 초 서울 노원구 공릉동 서울여자대학 인문사회관의 한 강의실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의 부자연구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부자에게 물건을 파는 ‘부자마케팅’을 공부했고 외환위기 이후 5년여 동안 국내 기업체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수천명의 부자를 만났다. 부자와의 만남을 통해 단순히 물건을 파는 마케팅에서 부자의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 ‘라이프 사이클’ 모두를 다루는 실용학문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제 주위에 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무척 많이 봐 왔습니다. 제가 다니는 한 교회에서 여 집사가 하도 가난해 집으로 찾아온 목사님에게 먹기도 힘든 쉰 김치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또 가난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정말 부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자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부자학을 시작했습니다. ”

#대통령과 최고부자

한국 최고의 부자는 누구일까. 한 교수는 몇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국 최고의 부자로 꼽는 칼럼을 썼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당시 주변에서는 ‘용비어천가’를 불렀다고 난리를 쳤지요. 그런데 아부한 게 아닙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삼성을 움직이지만 노 대통령은 국가를 움직였잖아요. 참여정부 초기에 노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 등 재벌 총수를 조그마한 삼계탕집에 불러 모은 적 있잖습니까. 재벌 총수들이 모두 다닥 붙어 식사를 했잖아요. 그게 (노 대통령이) 최고의 부자라는 증거지요. 개인적으로 봐도 노 대통령은 상고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부산에 가서 떨어진 뒤 대통령 된 거는 정말 탁월합니다. 상상도 못할 일이죠. ”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부자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게 한 교수의 진단이다. 최고의 부자로서 부자를 이끌었어야 했는데 아예 부정해 버리는 우를 범했다는 설명이다. 부자를 부정하는 건 성장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써서 서민을 부자로 만들도록 해야 했던 거죠. 부자를 불러 ‘부당하게 벌었으니 그 죗값으로 기부를 하도록 하고 그것으로 서민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나 서울대 없애면 그 비슷한 게 다시 생겨나는 겁니다. 어떤 경우든 일등은 있는 겁니다. 부자를 현실로 인정해야 했는데 부정했던 거죠.”(한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자신이 아는 부자들의 90% 이상은 엄청나게 부지런하다’는 말을 노 대통령에게 알려주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달쯤 직접 김해로 가서 노 전 대통령에게 이 말을 꼭 하겠다고 했다.)

#MB와 부자학

“먼저 부자의 더러운 면을 기부를 통해 순화시켜야지요. 그리고 더 많은 일반인을 부자로 만들고 저소득층도 지원해야죠. ”

한 교수가 부자학을 하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액면 그대로라면 이명박(MB) 대통령이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성공시대’ 판에 박은 듯하다.

과연 부자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MB의 평가는 어떨까. 의외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까지는 점수를 아주 많이 주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오전 6시30분에 출근하고 8시에 국무회의를 여는 건 부지런한 부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부자내각은 정말 문제가 있어요. 최소한 내각 중 3∼4명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쪽 사람이나 진짜 서민에 가까운 분들이 들어갔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 인구의 5%만이 부자일 뿐 나머지 95%가 일반인입니다. (MB가) 서민을 살리겠다고 해놓고는 부자내각을 짰으니 잘 안 맞는 거지요. 당연히 여론이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

아직까지 최고의 부자 MB에게서 부자의 최대 덕목인 베품의 미학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MB의 재산헌납에 대해서도 BBK 의혹이 터지기 전에 했어야 한다며 ‘평가절하’했다. 부자내각들도 기부나 월급 반납과 같은 행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훨씬 사정이 나아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비자금의 해법도 단순 명쾌했다.

“(삼성이) 상속세를 제대로 내지 않고 회사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산 건 정말 잘못된 겁니다. 횡령이죠. 만일 (특검수사로) 10명이 형사처벌하는 것과 사면하는 대신 2조원을 내는 대안이 있다면 어떤 걸 택해야 할까요. 부자학의 관점에서 당연히 2조원을 택해야 합니다. 2조원은 100만원씩 200만명이 생계자금으로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죠. (부자에 대한 나쁜) 감정 때문에 이걸 못 받는 거죠. 사회가 발전하려면 이 감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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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교수는 올해 안식년이라고 하지만 거의 매일 학교에 출근하며 여느 해 못지않게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한 교수는 자신이 세운 부자학학회의 활동과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작년 4월 안식년을 신청했고 학교 측에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가 부자학에 쏟아 붓는 열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자가 사는 법

“부자들은 자부심이 어마어마하고 비밀스럽죠. 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

한 교수는 부자들의 속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재벌 2∼3세가 모이는 부자클럽이 10개 정도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클럽에는 회사 매출 1000억원에 개인재산이 100억원대인 ‘소형’ 부자도 흔하지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처럼 ‘신흥거부’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전통이 없어서’ 끼워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4∼5년 전 부자를 대상으로 특강을 하러 갔다가 당황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강남에서 BMW 차량 구입자를 대상으로 고객 사은행사가 벌어졌는데 한 100명가량이 모여들었지요. 대체로 정장 차림의 부인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술집아가씨로 보이는 젊은 여성 4∼5명이 나타났습니다. 그들도 돈이 많아 차를 구입했던 거죠. 그때부터 부인들이 슬슬 없어지더니 조금 뒤에는 다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자신과 다른 부류와는 섞이기 싫어하는 거죠.”

또 우리나라 부자들은 학벌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돈에 관한 한 ‘박사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 부자 중 대부분은 대학 문턱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 재벌 2세들이 해외유학을 다녀와서 학벌이 좋아진 거죠. 과거에는 돈에 관한 비법을 스스로 터득해 부자가 됐던 거죠. 부자들은 밤낮없이 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돈벌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제가 아는 부자 중에는 3년 동안 2종목만 집중적으로 연구해 3억원을 주식에 투자해 30억원을 만드는 것도 보았습니다.”

대체로 일반인의 눈에 ‘기적’처럼 보이는 부자의 돈벌이에는 남모르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숨겨 있다는 얘기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부자가 되는 비법

한 교수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5%의 부자가 기업의 매출 중 절반을, 수익의 70%를 차지한다는 게 부자마케팅의 정설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은 국민소득 1만달러 이하일 때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부자를 찾고 사귀고 거의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 부자와 같이 밥먹고 사우나도 가고 골프도 하며 호흡을 맞춰야죠. 물론 이처럼 부자와 계속 생활하고 친해지기는 쉽지 않지만 그에 따른 성과는 엄청납니다. 예컨대 한 보험모집인은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 온 부자로부터 결혼 선물로 자동차 키를 선물 받았답니다. 물론 이 부자를 통해 올린 영업실적은 말할 것도 없는 거죠. ”

“대신 부자를 절대 속여서는 안 됩니다. 강남의 한 보석상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한 여성에게 보석을 2800만원에 팔았고 그 동생에게는 같은 제품을 2850만원에 팔았다고 합니다. 가격을 흥정하다보면 이 정도 가격 차이가 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부자’자매는 다시는 이 보석상을 찾지 않았답니다. 가격을 속였다는 거죠. 이 보석상은 50만원의 착오 때문에 매출의 25%가 날아가 버렸죠. ”

부자학 교수가 알기 쉽게 명료한 비법을 들려 줬지만 오히려 부자로 가는 길에 왕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부자 따라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기자는 그 비법을 샅샅이 캐내고 싶었지만 그래 봐야 진부한 부자마케팅 지식 이외에 별다른 뾰족한 해법이 나올 거 같지 않아 그만뒀다.)

#진짜부자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미국과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부자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지만 우리는 비난의 대상이자 공격의 표적입니다. 부의 축적과정이 정당하지 못하고 생활방식도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한 교수는 부자를 현실로 인정하고 과거의 묵은 때를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작년 9월 부자학회 창립 때 반(反)부자 정서를 현재보다 10∼50%까지 완화하겠다는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어떤 부자도 행운 없이 돈을 번 경우는 없습니다. 부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 국가에 빚을 지고 있지요. 예컨대 땅 투기 정보를 우연히 알아 큰돈을 벌었다면 그 사람은 그 정보를 제공한 정부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합니다. 저가의 제품을 고가로 속여 떼돈을 번 경우도 어수룩한 사회가 기회를 제공했던 거죠. 최소한 이 행운의 대가 이상은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겁니다.”

한 교수는 부자와 일반인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종합부동산세, 부유세, 상속세를 강화하는 대신 일반인들이 부자를 존중하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존경받는 한국형 부자 모델의 발굴 작업도 시급하다고 한다.

“아마도 경주 최부잣집은 한국형 부자모델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집안은 과거 10만석 이상의 쌀을 쌓지 않았고 흉년이 들 때면 곡식을 농민에게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명문가는 300년 동안 부자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인심이 좋아 집안에 도적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16일 부자학학회 주최로 열리는 ‘존경받는 부자의 날’행사에서 경주 최부잣집의 장손인 최임씨가 직접 나서 강연에 나설 예정이다.)

한 교수는 이처럼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진짜 부자가 많아져야 우리 사회와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짜 부자가 돈을 벌고 쓰는 나라에서 경제가 발전하는 겁니다. 80억원짜리 자동차나 5000만원짜리 고가의 옷, 100만원짜리 도시락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입니다.”

#부자학은 비정치이자 융합과학

한 교수는 인터뷰 내내 부자학연구학회의 성격이 ‘비정치’ ‘비영리’ ‘비종교’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하며 조심스러워했다. 실제 그는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서 ‘입장이 비슷하다”며 캠프에 합류해달라는 ‘러브콜’을 받았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정치적 오해를 살까봐 학회의 활동은 대선 기간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자학회는 좌파건 우파건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출신의 골수 좌파인사도 있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농경제학 교수도 있다. 이분들은 노동자와 농민을 부자로 만드는 부자학의 연구과제에 공감을 한 것이지요. 예컨대 부자학의 관점에서는 FTA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논의하지 않습니다. FTA가 농민을 ‘부자’로 만들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겁니다.”

부자학회는 출범 6개월 만에 회원이 부자 100여명, 학계인사 100여명, 기업·금융회사 간부 100여명을 포함 모두 8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이미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학회에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관심을 모은다.

“부자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 연구하다 보니 경영학만으로는 부족하고 경제사, 철학,역사, 사회학, 교육학, 의학·간호학, 벤처공학 등 각 분야의 전문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부자학은) 종합·융합과학이지요.”

실제 한 교수는 현재 5권의 부자학 관련 책을 공동집필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계각층의 전문가가 대거 합류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황상민 연대 심리학과교수, 김형철 연대 철학과 교수, 허동현 경희대 사학과교수, 고영건 고대 심리학과교수, 현택수 고대 사회학과 교수, 박명호 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정대용 숭실대 벤처학부 교수, 김상운 광운대 철학교수, 강철희 연대사회복지학과교수가, 기업·금융계에서도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조성환 미래에셋생명 본부장, 나병윤 미래에셋증권 본부장, 정유신 굿모닝 신한증권 부사장, 김영일 SC제일은행 부행장, 왕윤종 SK경제연구소 상무 등이 참여하고 있다.

#에필로그

부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재테크 조언도 곧잘 한다는 부자학 박사에게서 본인의 수입과 재테크 실력이 궁금해졌다.

“예전에 5년 정도 기업체의 경영자문역을 해 주고 부자학 개설 이후 외부특강도 많았죠. 그때는 (수입이) 꽤 짭짤했지요.”(웃음)

재테크 실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때 번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고 요즈음에는 주식형펀드를 좀 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흐름에 맞춰 제대로 투자해 꽤 많은 수익을 올린 눈치다. (나중에 그는 부자동네인 성북동 저택에 살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돈을 번 만큼이나 기부도 많이 한다. 작년에만 저소득층 지원단체 등에 낸 기부금이 3000만∼4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나 자유기업원 등 비영리단체에서 강연이나 자문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전액 학회에 기부해 왔다. (외부수입 가운데 비영리단체 쪽은 전체의 30%가량 차지한다.)

글=주춘렬 기자, 사진=송원영 기자 cljoo@segye.com

◆한동철 교수는=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부자마케팅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울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4년부터 국내 처음으로 부자학 개론을 개설했다. 2006년 6월 부자연구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작년 9월에는 부자학 연구학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맡았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부터 50여개의 기업체에서 자문과 사외이사로 활약하며 수천명의 부자를 직접 만나 심도 있는 부자연구를 해왔다. 2012년까지 부자학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세계부자학연구학회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Posted by 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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